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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ebs다큐프라임] - 4. 위기의 자본주의를 구할 아이디어는 있는가

더꿈이코노믹스 2023. 8. 3. 16:13

 
자본주의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를 쉽게 풀어낸 방송,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5부작’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지갑 속 돈과 통장, 매달 갚아야 할 대출금과 이자, 살고 있는 집의 가격 등 이 모든 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자유롭지 못한 오늘날, 세계 최고의 석학들을 만나 돈에 관한 진실과 자본주의의 비밀을 밝혀낸다. 그리고 무의식중에 우리를 나락으로 빠뜨리는 자본주의의 유혹과 위협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도 알려준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자신이 돈을 알맞게 쓰고 있는지 체크해 볼 수 있고, 자신을 지키며 행복하게 소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
EBS 자본주의 제작팀
출판
가나출판사
출판일
2013.09.27

 

 

 

PART 4. 세상을 바꾼 위대한 철학들

위기의 자본주의를 구할 아이디어는 있는가

 

1. 금융위기는 반복해서 일어난다.

📃우리는 늘 위기와 함께 산다.

2008년의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사람들은 이 일이 잠시 지나가는 일시적인 일이기를 바랬으나, 코로나19 시절의 양적완화 이후 찾아온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는 요즘은 또다시 찾아온 금융위기 일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는 구조적 특성상 계속해서 악순환의 굴레를 만든다. 은행은 끊임없이 신용창조를 통해 돈을 부풀리고, 누군가는 빚을 지고 파산하며, 금융자본은 계속해서 더 많은 수익을 올린다.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 서민들을 울리던 투기적 자본은 다큐멘터리가 만들던 때나, 지금이나 형태만 조금씩 바뀔 뿐 여전히 활발히 활동중이다.

 

1980~현재, 한국/세계/G7의 GDP 변화량을 나타낸 차트이다.
 

 

  이전 시리즈에서도 다루었지만, 인플레이션-디플레이션 경제순환주기는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겪을 수 밖에 없는 위기의 단면을 보여준다. 은행이 대출로 돈의 양을 늘리고, 중앙은행이 시스템에 없는 이자를 위해 돈을 찍다보면 인플레이션이 극대화된다. 그리고 뒤따라 경제위기라 부르는 디플레이션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대출받은 사람들이 파산하기 시작하면, 중앙은행은 통화량을 줄이는 조치를 조치하게 되고 시중에는 돈이 부족해져 문제가 발생한다.

 

  지난 250년간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위기의 파도를 넘어오며 때마다 새로운 경제학의 아이디어가 이를 극복할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4-5장에서는 위대한 경제학자들을 만나보고자 한다. 4장에서는 자본주의의 아버지, 국부론의 [아담 스미스]와, 공산주의의 아버지, 자본론의 [칼 마르크스]를 살펴본다.

 

 

 

 

2. 노동만이 최상의 가치다. -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99%의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아담 스미스'라고 하면 항상 연상되는 말이 '보이지 않는 손'이다. 모든 건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할 때 항상 나오는 이 말에, 아담 스미스는 시장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의 편에 있는 사람, 더 나아가서 부자들의 편이라고 오해 받곤 하는데, 하지만 아담스미스가 '국부론'을 집필한건 가난하고 박해받는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성경 이후로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까지 불리는 국부론은 1776년 3월에 출간되었다. 최초의 근대적인 경제학 저술이자 오늘날까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국부론은 칼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 헨리포드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의 원리인 '분업'에 대해서 처음 이야기한 책이기도 하다. 즉, 자본주의 시장 원리의 기초가 되는 메커니즘을 처음으로 밝힌 책이며, 이로 인해 아담스미스를 '자본주의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 6,5 ~ 1790. 1. 12.)

1723년 스코틀랜드 파이프주의 커콜디에서 태어난 아담 스미스는 14살에 영국 글래스고 대학에 입학하여 주로 도덕철학을 공부했다. 1740년 장학금을 받으면서 옥스퍼드 밸리올 칼리지에 갔지만 교수들의 모습에 실망하고는 학교를 떠난 뒤에는 공개강연을 하며 큰 인기를 끌기도 하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과 만나며 자신의 사상을 조금씩 다져갔다. 그리고, 1750년 후반 다시 글래스고에 돌아와 도덕철학교수가 되었다.

 

아담스미스는 '사람들의 본성과 행동'에 대해 연구하여 [도덕감정론]이라는 책을 내었다. 이 책의 근본적인 질문은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이 이기심을 누르고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는가?'이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아담스미스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므로 도덕적 행동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이 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마음속에서 우리의 행동을 지켜보는 '공명정대한 관찰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일으켰고, 그 가운데에는 당시 정치가였던 찰스 타운센드 공작도 있었다. 찰스 공작은 양아들 헨리 스코트의 대륙 여행에 동행하며 가정교사가 되어주기를 요청했고, 아담스미스는 3년간 프랑스와 스위스 등을 돌아 다니며 쟁쟁한 사상가들을 만났고 이를 메모로 남기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국부론의 시작이었다.

 

 

📃변화의 시대, 아담 스미스가 만난 사람들

아담 스미스가 여행하던 당시 18세기는 '변화의 시대'였다. 봉건적 질서가 무너지고, 근대 자본주의가 막 시작하던 시점이었으며,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 생산품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자유무역도 활발해졌다. 그 당시에 국가의 부를 '금과 은의 축적'으로 보는 중상주의 사상이 지배하고 있었다. 아담스미스는 이를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행 중에 만난 중농주의자 케네를 통해 중상주의 대신 국부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릴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루이 15세의 주치의이자 경제학자였던 케네는 의사였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를 하나의 육체로 보고, 사회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연구해 왔다. 사람이 먹어야 살 듯 사회도 인간이 노동을 해서 생산한 식량과 원료, 상품을 유통시켜야 사회가 성장시킨다고 보았으며, 농민(생산), 장인/상공인(비생산), 소유자(소유)로 구성되는 3개의 계급 사이에서 화폐가 돌아다니며 생산물을 공급한다고 생각했다.

 

아담 스미스는 케네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지만 이 아이디어를 갖고, 당시 잦은 교류를 했던 영국의 철학자이자 실증적인 철학을 했던 데이비드의 흄의 생각, 즉 '머릿속의 공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사물을 보고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는 태도로 자기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부의 생산과 자유경젱 체제를 목도하고 그것이 지닌 가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스미스는 '국부'는 '모든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의 양'이라고 규정했다. '어디서든지 노동이 이루어지면 부가 생각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가치는 노동에 의해 생기므로, 상품의 교환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노동량으로 정해야 한다고 여겼다.

 

스미스는 우리가 빵을 먹는 건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돈을 벌고 싶은 이기심 때문이라고 했다. 이러한 이기심들이 모여 경제를 돌아가게 하였다. 즉, 가격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 시장경제를 잘 돌아가게 한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자유로운 시장만이 개인과 국가를 부자로 만들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부론에서 딱 한번밖에 등장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손'이라는 말로, 그가 꿈꾸는 완전한 자유시장체제를 설명했다.

 

 

📃아담 스미스를 오해하는 이들에게

이 후 정부의 개입이나 규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손'을 자주 끌여다 쓰면서, 아담 스미스에 대한 오해가 쌓이기 시작했다. 아담스미스가 자유무역을 신봉하고 거대정부를 반대하고, 자유시장 경제쳬제를 지지했기에, 보는 시각에 따라 스미스를 '부자들의 편'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특히 '자유로운 개인의 이익 추구'라는 부분에서 스미스를 오해하곤 하는데, 하지만 스미스는 부자들의 무한정한 이익 추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경제적 이기심은 사회의 도덕적 한계 내에서만 허용된다.'고 선을 그으며,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을 허용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인간 행동 규범의 틀'안에서 한정했다. 이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평등하게 그 틀안에서 부를 추구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이는 그가 이전에 쓴 [도덕감정론]의 주장과 일치한다.

 

가난한 자들에 대해 많은 연민을 느낀 스미스는 그들을 돕는 최선의 길이 자유시장 경제라고 생각해 이를 강력하게 옹호했다. 인간은 이기적이나 한편으로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기에 이기적인 행동이 공공의 이익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여겼다. 비록 그가 '자본주의'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찜나 '인간의 도덕적 범위 내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체제'라고 그의 이상을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믿은 자유시장경제는 부를 만들어내는데는 탁우러했으나, 분배되는데에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결과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졌고, 부자인 사람은 더 부자가 되었다. '국민 대부분이 가난하고 비참한 생활을 하는데, 그 나라가 부유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라고 말한 그가 지금의 자본주의 세상을 보며 뭐라고 이야기 할까.

 

 

 

 

 

 

3. 쉬지 않고 일해도 왜 가난한가 -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마르크스의 생애와 유물론적 변증법

아담 스미스가 주장한 자유로운 시장체제는 19세기를 거치며 점차 자본주의의 모습을 갖춰갔다. 하지만 자본가에 의해 희생된 노동자들의 고통이 점점 커져갔고, 이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이 독일의 철학자 '칼 마르크스'였다. 2008년 영국 공영방송 BBC가 진행한 설문에서 '지난 1천년간 가장 위대한 철학자'으로는 칼 마르크스가 '지난 1천년간 가장 영향을 끼친 책' 에는 칼 마르크스의 책 '자본론'이 각각 1위로 뽑히기도 했다.

 

'가난한 사람은 왜 항상 가난해야 할까', '자본주의는 정말 이상적인 체제일까'라는 새로운 의문을 최초로 던진 철학자이기도한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하는지 밝혀내고 싶어했다. 그가 어떤 궤적을 따라 자본주의를 분석하였는지 그의 생애를 좇아가 본다.

 

마르크스는 1818년 5월, 독일 라인 주 트리어 시에서 7남매중 첫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변호사였던 그는 12살 때 부터 라틴어, 그리스어, 역사, 철학을 배우며 유복하게 크다가 1835년 본 대학에 입학하면서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 미술사 등을 배웠다. 그렇게 문학가의 삶을 꿈꾸던 그는 헤겔의 변증법과 포이버바흐의 유물론을 만나면서 새로운 길로 접어든다.

 

변증법이란 인간, 자연, 사회 등 세상의 모든 것은 고정불변이 아니라 '정반합'의 법칙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철학이다. 그러나 변화, 발전시키는 주체가 세계 밖에 존재하는 '절대정신'이라는 헤겔의 주장에는 데에는 동의하지않았고, 독일의 철학자 포이어바흐가 주장한 물질이 세계를 지배하며 이끈다는 '유물론'을 받아들여 '유물론적 변증법'이라는 자신만의 관점과 철학을 만들어 갔다. 그러면서 청년헤겔학파의 지도자격인 인물이 되었으며, 점차 무신론에 입각한 급진적인 사상을 키워나갔다. 당시 왕권에 입각한 전근대적인 체계를 가진 프로이센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독일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영국으로 - 공산주의와 엥겔스를 만나다.

대학 졸업후 마르크스는 대학교수가 되고자 했으나, 급진적 무신론적 사상을 지닌 그를 이미 프로이센 정부가 요주의 인물로 보고 글을 기고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결국 대학 교수의 꿈을 포기한 마르크스는 반정부신문인 '라인신문'에 글을 기고했고, 그 후 편집장이 되어 현실 정치와 경제에 대해 보다 심각한 고민을 하였다. 특히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든 노동자들이 처한 처참한 현실을 보고, 이를 보도하기 시작하자 프로이센은 보다 강한 검열을 하였고, 마르크스는 신문을 폐간하고 파리로 간다.

 

파리로 간 마르크스는 그곳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2가지, '공산주의'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만나게 된다.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계속 글을 쓸 수 있게 지원했으며, 자본론 1권을 마칠 때까지 맨체스터에서 그의 가족이 하는 면직공장을 운영하며 많은 돈을 보냈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조직을 만나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고, 점차 혁명적인 공산주의자로 변하게 된다. '계급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진 그는 1845년 2월, 프로이센 국적을 포기하고 브뤼셀로 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공산단 선언]을 발표한다.

 

그 이후로도 마르크스는 급진적이 인쇄물을 계속해서 발간하여 독일,파리,브뤼셀에서 쫒기고 추방당하다가 1840년대 말 영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마르크스의 생활은 늘 궁핍의 연속이었고, 그 사이 6명의 자녀 중 3명의 아이를 잃게 된다. 마르크스 가족은 모친의 사망 후에 받은 유산과 엥겔스의 기부금 덕분에 작은 연립주택으로 이사한 후에야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써내려간 1867년에 이르러서야, 15년 이상을 바친 필생의 역작 [자본론] 1권, '자본의 생산과정'을 출간하게 된다. 자본론을 써내려가며 그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수백번 읽고, 이를 가장 많이 인용했다. 마르크스가 그의 유물론적 변증법을 경제연구에 최초로 적용해 자본주의 문제점을 분석한 책, 자본론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자본론

1. 상품 - 사용가치 + 교환가치 / 평균 노동시간 / 화폐의 물신성

자본론에서 제일 먼저 다루는 것은 '상품'이다. 인간이 생산하고 사용하는 모든 물건을 의미하는 '상품'은 쓸모가 있는지를 따지는 '사용가치'와 교환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교환가치'를 모두 가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상품은 노동을 통해 생산해 낸 것이라고 주장하며, 상품의 가치는 상품을 생산하는데 들어간 '평균 노동시간'으로 결정된다고 정의 했다.

 

예를 들어 6시간 동안 6켤례의 신발을 만든다면, 1켤레의 신발은 1 노동시간을 갖는다. '화폐'는 이러한 상품의 가치를 표시하는 수단이라고 보고, 앞으로 '돈이면 뭐든지 다 된다'는 화폐의 물신성이 생겨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담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노동가치론을 이어받아 '노동이 최고의 가치'라고 전제하면서도 아담 스미스의 분업은 오히려 노동자를 기계 부품처럼 만들어버린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본론의 원래 목적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은 왜 항상 가난하고, 왜 놀고 먹는 자본가들은 점점 더 부자가 될까'하는 의문의 대답을 이윤은 어디에서 오는지 알아냄으로써 찾아냈다.

 

2. 절대잉여가치

자본론 1권은 어떻게 자본이 이윤을 남기는가에 대해 설명하면서, 노동시간이나 노동일수를 늘리는 '절대적 잉여가치'의 원리에 대해 말한다.

 

빵공장이 하나 있다고 가정하자. 빵 1개를 만들기 위해 밀가루 1kg와 함께, 기계와 사람의 노동력이 들어간다. 각각을 1노동시간이라고 한다면 빵 1개를 만드는데는 3 노동시간(밀가루 1, 기계 1, 사람 1)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1 노동시간을 화폐로 환산해 1천원이라고 한다면, 빵 1개는 3천원이 된다. 노동자가 밀가루와 기계로 평균 8시간 일한다면, 24 노동시간동안 빵 8개가 생산되고 이에 대한 가격은 2만 4천원이 된다.

 

자본가는 빵을 만드는 단계에서 밀가루와 기계는 정해진 가격이 있어 각각 8천원을 이미 지불하게 된 것과 같다. 자본가는 노동력에 대한 지불 값인 8천원 중에 3천원만 노동자에게 지불하고, 남은 5천원은 자본가의 주머니에 넣는다. 이 때의 남은 5천원이 '잉여가치'가 된다. 노동자들은 자본가가 언제 그만두라고 말할지 몰라 이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지 못하고, 이를 알고 있는 자본가는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더 오래 일을 시킨다. 물론 일당을 절대로 더 주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렇게 노동시간의 연장으로 만들어지는 잉여가치를 '절대적 잉여가치'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본가는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 '노동 생산성'을 높이고자 한다. 노동자가 빵 3개를 손으로 만들 떈 3시간 걸리지만, 더 좋은 기계를 들이면 1시간이면 된다고 하자. 그러면 더 적은 시간에 더 많은 빵을 만들게 되는데, 이렇게 필요노동시간을 줄어들고 잉여노동시간은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결국 노동자의 임금은 더욱 내려가고, 자본가는 그만큼 이윤을 남기는데 이를 '특별 잉여가치', '상대적 잉여가치'라고 정의한다.

 

3. 마르크스의 예측 - '결국 자본주의는 무너지고 사회주의가 나타날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이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면 실업자가 늘어나게 될 것이고, 일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임금은 더 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상품은 쏟아져나오겠지만, 이를 구입할 사람들이 없어 팔리지 않을 것이고 결국 기업도 자본가도 망하게 되는 공황이 찾아오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끝내 참다 못한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며, '결국 자본주의는 무너지고 사회주의가 나타날 것'이라고 보았다. 자본주의는 지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계급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보지 못한 채 1883년 3월 14일, 그의 평생의 동지였던 엥겔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의자에서 삶을 마감했다.

 

그의 사후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유고를 모아 1885년엔 [자본론] 2권인 '자본의 유통과정'을, 1894년엔 3권인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 과정'을 발간했다. 그리고 자본론은 '사회주의의 성서'로 불리며 '성서보다 많이 팔린 책'이라는 명예를 얻었다. 시간이 흘러 그의 이론과 사상은 자본주의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공산주의 국가 탄생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고, 앞으로도 그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나올 것이다. 그의 예상과는 달리, 그가 떠난지 140여년이 지난 지금은 공산주의는 붕괴되었고, 자본주의가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본론]은 가치가 없는 책인가?

 

 

 

 

4. 아담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의 공통점 - "사람"

자본주의는 위기 때마다 새롭게 변신하며 살아남았다. 그 변신 가운데 마르크스가 남긴 경고도 그 파도를 넘게 해준 하나의 큰 돛이 되었을 것이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꿈꾸고,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통해 펼쳤던 이상적인 사회는 결코 지금의 모습은 아니다. 다르게 보이든 그들의 사상의 시작점이자 공통점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이 잘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도 바로 이러한 부분이다. 경제, 돈, 분배의 시스템을 보는게 아니라 '사람'을 보아야 한다. 사람이 지닌 고통을 생각하고 이를 덜어주기 위한 따뜻한 마음에서부터 우리 경제를 다시 보고 재구축해나가야한다.


 

🐻 나의 오랜 생각들을 깨어내며

살다보면, 아니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늘 본질은 흐려지고 껍데기들만 남는 걸 보게 된다. 예수의 탄생 이후 펼쳐진 가톨릭의 시대에 반발해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린 신교 세력이 나타났던 종교혁명이나, 가난한 자들을 위해 생각해낸 자본주의가 오히려 더 착취하게되자 일어난 프롤레탈리아 혁명 등의 거대한 인류 사건에서부터, 나를 유익하고자 했던 계획들이 도리어 내 삶을 옥죄어오는 수단이 될 때같이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든 간에 처음에 질서를 세워 좋게 시작했던 것들이 제각기의 이기심이 더해지고 쌓여서 질서가 무너지는 것들을 늘상 보게 된다. 끝내 그것들을 무너뜨리고 나서야 우리는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독일과 예맨의 통일 이후 '이 세상의 유일한 분단국가' 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한반도는 늘 이데올로기의 싸움터였다. 남과 북의 오래된 대치 가운데 대한민국 안에서도 각자의 생각에 따라 늘 다툰다. 특히 민주주의를 표방하기에 각자의 의견을 존중하고자 하나, 서로를 빨갱이, 종북, 친일파, 매국노 등등의 비난하며 싸우면서 살아간다. 소련의 붕괴와 함께 냉전이 종식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를 비롯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논하는 건 괜시리 눈치가 보이고, 자기검열에 들어가게 된다. '공산주의는 나빠', '북한은 망해야해', '김일성 개xx 해봐' 등등 어릴적부터 들어온 말들에 마르크스, 공산당 선언 등을 먼저 외면하고 살았다.

 

 

부끄럽지만 이번 다큐멘터리를 통해서야 나의 편협한 생각들을 넓힌 느낌이다. 지금의 북한이 더이상 진정한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 자본주의의 비겁함과 잔혹함을 중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보게된다. 감정적으로 싫다고 해서 이를 이해해보려고 하지 않는 것 또한 게으름이자, 무지하다는 것도 반성하며, 그 감정이라는 것도 어디서부터 오는지 살펴보아야 함을 깨닫게 된다.

 

 

오늘은 두 주인공 '아담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의 이야기를 살짝 들여다보는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다만, 그들의 생각과 사상이 시작된 지점이 '사람에 대한 연민이자 관심' 인 것 만은 가져가는 것 같다. 비단, 경제 문제 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많은 숫자들을 마주하게 되겠지만, 본질적으로 사람을 사람답게 살아가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잣대를 들어야겠다.

 

 

* p.s

늘 다짐하면서 글을 마무리하는 것 같다. 뭔가 깨달아야한다, 알아야한다 라는 강박관념인 걸까? 물론 그런 것도 있겠지만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의 내가 되기를 바라는 욕심 때문이라 얘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