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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슈뢰딩거의 고양이들에게

더꿈이코노믹스 2023. 8. 17. 16:30

 
오펜하이머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파괴할 지도 모르는 선택을 해야 하는 천재 과학자의 핵개발 프로젝트.
평점
7.4 (2023.08.15 개봉)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킬리언 머피, 에밀리 블런트, 맷 데이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플로렌스 퓨, 조쉬 하트넷, 캐시 애플렉, 라미 말렉, 케네스 브래너

이 감상문은 영화 '오펜하이머'의 스토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모순(矛盾 / Contradiction, Discrepancy)
어떤 사실의 앞 뒤, 또는 두 사실이 이치상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음을 이르는말.
중국 초나라의 상인이 창과 방패를 팔면서 창은 어떤 방패로도 막지 못하는 창이라 하고, 방패는 어떤 창으로도 뚫지 못하는 방패라 하여, 앞뒤가 맞지 않은 말을 하였다는데서 유래한다.

 

사람은 누구나 모순적인 면을 갖는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고, 앞으로도 우리 인간들의 내면은 혼란스럽다. 다행이라고 할만한 건 우리가 양자역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방법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슈뢰딩거의 고양이' 일 것이다. 1935년 에르빈 슈뢰딩거가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비판하기 위해 고안한 사고실험이다. 실험을 요약하자면 상자 안의 고양이가 1시간 뒤 절반의 확률로 살아남거나, 죽을 수 있다. 문제는 양자역학의 해석에 따르자면 이 고양이의 생사 여부를 확인해보기 전까지 이 고양이의 상태를 살아있으면서도 동시에 죽어있는 상태라고 규정한다는 것이다. 즉, 상자를 열어 관측하기 전까지 살아있는 고양이와 죽어있는 고양이가 상자 안에서 중첩된 상태로 공존한다는 것이다. 

 

코펜하겐 해석(양자역학을 이해하려는 방법 중 가장 주류인 학문)에 따르면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죽음과 생존이 중첩된 상태'라고 하는 건, 결코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관측되기 전까지 두 가지 상호배타적인 상태가 공존하며, 관측한 다음에 둘 중 하나로 결정이 된다는 것이다. 이를 간단히 '파동함수가 붕괴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의 내면은

슈뢰딩거의 고양이

현시대의 우리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혼재되어 있는 자아를 가졌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의 내면은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 성직자의 고결함과 함께 범죄자의 음침함도 갖고 있으며, 채우지 못하는 끝없는 욕망과 함께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는 충만함도 있다. 그리고 이 극단 사이에서 매일, 매순간마다 어느 환경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상자 뚜껑을 열었을 때 고양이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듯, 어느 한 순간에 우리의 내면의 어느 한 부분이 포착된다. 

 

이전에는 이런 부분들, 특히 악하거나 좋지 못한 부분들을 '인간의 연약함'이라 얘기했다. 온전하거나 완전한 인간 상을 두고 끝임없이 채찍질이나 수행을 하거나, 신의 뜻 아래에 내려놓기를 간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의 모든 것들은 늘 불완전하며, 우리의 내면도 그러하다. 한 순간 깨달아도 조금만 지나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살아간다. 열역학 제 2법칙(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마냥, 질서가 잡아도 곧 흐뜨러지며, 다시 모으려 힘을 쓰기 전까지 어지러히 남아있다. 

 


서두를 좀 어렵게 시작했던 것은 오늘의 주인공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1940-1967)' 가 양자역학의 태동기의 천재 물리학자이자, 양자역학를 응용해 원자폭탄을 만든 '맨하탄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이었기 때문이다. '인터스텔라', '테넷', '인셉션' 등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펜하이머'는 오펜하이머의 전기 영화이다. 

 

영화는 3가지 시간대를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1) 풀컬러로 보여주는 학창 시절부터 맨하탄 계획까지가 하나, (2)빛바랜 색감으로 보여주는 1954년의 오펜하이머 청문회가 둘, (3) 마지막으로 흑백으로 묘사된 1959년의 루이스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의 청문회로 구성되어 있다. 


소심한 천재 청년에서 과학자들의 우두머리로

영화는 오펜하이머의 케임브릿지 대학 유학시절부터 시작된다. 실험물리학에 서투르던 오펜하이머는 지도교수 패트릭 블래킷을 독살하려 주사기를 이용해 사과에 시안화칼륨을 넣으려고 하는 등 지독한 향수병, 신경쇠약 증세를 보인다. 닐스 보어의 권유로 괴팅겐 대학교로 옮긴 오펜하이머는 그곳에서 이론물리학과 양자역학을 접하게 되고, 이 후 미국으로 넘어와 실험물리학자인 어니스트 로런스와 협업하며 연구를 이어 나간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군 장성 레슬리 그리브스가 찾아와 맨하튼 계획의 책임자로 임명한다. 임명과정에서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오펜하이머는 그리브스와 함께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함께할 물리학자들을 섭외하러 다녔고,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곳, 뉴멕시크주의 로스 앨러머스에 새로운 연구소로 학자들과 그 가족들을 불러모았다. 

 

"나치보다 빨리 만들어야 한다"라는 일념하에 자존심 센 물리학자들을 어루고 달래면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한편, 당시에 투표권도 없을 정도로 무시당했던 여성 과학자들까지 프로젝트의 한 부분을 담당할 수 있게 하는 등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유연하면서도 효율적이게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1945년 7월 16일 새벽 5시 30분경, 인류 역사상 가장 첫번째 핵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하게 된다. 이 후 우리에게 팻맨과 리틀보이로 알려진 두 핵폭탄이 연구소 밖을 빠져나가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뒤 세계대전이 종전된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달게된 오펜하이머는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한 연설장에 들어서고,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열광한다. 연구소 안에서도 오펜하이머가 이끌어낸 성공을 자축하며 행가레를 하기도 하는데...

 


오펜하이머의 고양이

오펜하이머가 숨기고 싶었던 내면은 무엇이었을까? 

자기의 지도교수를 죽이려고 했던 그 순간, 남편이 있던 여자와 결혼을 하고도 옛 연인과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했던 결정들, 그리고 영화에서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숱한 여성들과의 염문도 있었다. 공산당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주변인물들이 공산주의자였고, 모임에는 자주 참석하는 등 공산당과 교류를 하기도 했다. (19세기에서 20세기까지 사회주의와 그로부터 파생된 공산주의는 산업사회에 들어서 발생한 노동자의 인권문제들과 경제 대공황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점들의 대안으로 주목받던 사상이었다. 새로운 학문에 대한 호기심, 노동자들의 연대 등에 관심이 있던 오펜하이머가 공산주의에 관심을 갖는건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오펜하이머의 성격을 두고 '굉장히 부드럽고 세심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걸 힘들어했고, 평생 사랑과 우정을 무척 갈망했던 사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쏟는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선택들로 아내에게 상처를 주었고, 연인 진 태트록과 공산주의와 연관된 그의 과거들은 맨하탄 프로젝트 때에나 냉전시기 매카시즘이 미국을 휩쓸고 있을 때 그의 발목을 잡았다. 

 

 

영화는 오펜하이머의 행적을 비추기만 할 뿐 판단하려고 들지는 않는다. '원자폭탄의 아버지'에서 반핵운동가로 변모하고 핵 확산을 막기 위한 행보를 이어나간다. 2차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 직접 일본의 어느 지역에 어떻게 투하해야할지 지시하기까지 했으나,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사과는 하지 않았는데, 전쟁을 확실히 끝내는 것이 인명피해를 더 줄이는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라고.

 


전쟁은 영화가 아니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진 뒤의 모습 /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중 폭격으로 폐허가 된 모습

3시간의 긴 영화 속에서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한편으로는 강렬한 시각과 수초가 흐른뒤 몰려오는 큰 폭발음으로 핵폭발 위험성을 느끼게 만든다. 한 강연장으로 오펜하이머가 들어가고 나가는 장면을 통해서는 핵무기를 개발하는 과정과 이를 성공하기까지는 영광의 길이었다면, 핵으로 인해 까맣게 불타거나 하얀 먼지로 흩어지는 사람들, 구토하는 모습들은 과학자로서 겪어야할 고뇌와 괴로움들을 보여준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 시험을 지속적으로 하는 뉴스에 수십년째  노출되어서일까, '핵'이라는 단어는 그냥 접두사 처럼 쓰이는 요즘이다. 핵주먹, 핵펀치, 핵매운맛, 핵노잼 같이 한 때 유행하던 말들은 어쩌면 핵이 주는 공포감을 이겨내려는 작은 희화화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너무 둔감해지다보니 핵이 얼마나 위험한지까지 잊고 사는 것 같기도 하다. 

 

작년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2년째 접어들었다. 러시아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날것 같던 전쟁 초기와 달리 우크라이나의 반격으로 공방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며 23년 8월 지금은 전선이 어느정도 고착화되어가는 모양새다. 코미디언이었던 젤렌스키 대통령의 반전 모습과 러시아의 푸틴과 바그너그룹 사이의 분쟁, 드론이 가져온 새로운 전쟁 유형까지, 전쟁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세간의 관심을 받은 건 러시아의 전술핵 사용 문제였다. 

 

전술핵을 쓴다면 어디에 쓸 것이며, 그 후폭풍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이 전쟁을 둘러싼 다른 나라들, 특히 핵을 보유한 국가들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중국의 대만이 침공하지 않을까, 북한이 도발하지 않을까 등의 확전우려까지 다루던 뉴스들을 지켜보면서 아득히 먼 땅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였기에, 또 일어나지 않을거 같다라는 생각 때문에 핵,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그 안일한 생각들을 밝은 섬광과 커다란 폭발음으로 머릿 속을 씻겨버렸다. 

 

전쟁은 영화가 아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은 총알이 피해가지만, 전쟁은 그냥 세상을 살아가던 아무개들의 몸을 관통한다. 코로나19로 쌓여간 피로감들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경기침체의 어두운 그림자들이 드리우고 있다. 미국의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중국의 부동산 경기가 휘청거린다. 연일 유가가 오르고 가계부채의 위험성도 커져가고 있다. 이러한 내부의 불만들을 직면한 각국 정부와 지도자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외부로 눈을 돌리려 애를 쓴다. 우리의 적은 밖에 있다고. 야당과 사회인사들은 반대로 이야기도 할것이다. 문제는 당신이라고.

 


우리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들이다. 

다시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의 내면, 그러니까 우리의 몸 안과 밖 모두는 상호공존할 수 없는 것들이 공존하면서 산다. 없애고 싶지만 없어지지 않고, 계속 현 상태를 유지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이나, 아니면 그 아무것도 아닌 것들 모두가 한 몸을 이루어, 미우나 고우나 같이 살아가야 한다. 

 

사라지는 것들은 없다. 그저 관리해 나가야 할 뿐.

원자 폭탄이 세상을 모두 불태울 확률을 계산했을 때 '0으로 딱 떨어졌으면 좋겠지만, 0으로 수렴할 뿐'이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