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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꿈_이코노믹스
[콘크리트 유토피아] 회색 스펙트럼 위를 걷는 우리의 삶에 대하여 본문
- 평점
- 7.0 (2023.08.09 개봉)
- 감독
- 엄태화
- 출연
-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 박지후, 김도윤, 이서환, 강애심, 이효제, 김주승, 김병순, 이선희, 권은성, 김학선, 공민정, 엄태구, 정영기, 오희준, 김준배
이 감상문은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스토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무너졌다,
단 한 곳 황궁아파트 103동을 제외하고서.
대지진 속 대도시 서울은 무너진 콘크리트 밭이 되었고, 거기다가 한파까지 덮쳤다. 살아남은 자들은 유일하게 우뚝 선 황궁아파트 103동으로 모여들었다.
'선택받았다'
황궁아파트 기존 입주자들은 외부인들이 몰리는게 부담스럽다. 가뜩이나 먹을게 없는데 꾸역꾸역 모여드는게 '바퀴벌레'같기만 하다. 그러다 한 주민이 자기 집에 침입한 외부인에게 흉기로 찔리고, 집에 화재가 발생하는 사고가 발생하게 되고, '부녀회장'을 주최로 입주민 대책 회의가 열린다.
'외부인을 내보낼 것인지'에 대한 안건을 놓고 저마다 이야기를 내지만 싸움만 날 뿐 진전이 되지 않는다. 부녀회장은 공무원이었던 '민성'에게 의견을 묻는다. 민성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구심점이 되어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 고 얘기하자 부녀회장은 기다렸다는 듯 이전 사고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했던 902호 주민 '김영탁'을 대표로 추천한다. 그리고 이어진 주민투표에서는 '외부인을 내보낸다'로 결정이 나고, 빈집을 나눠주겠다는 핑계로 외부인들을 밖으로 유인한 뒤 쫓아낸다.
일련의 사건들로 영탁은 주민들의 대표로서 인정받게 되고,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는 구호 아래 황궁아파트 103동은 지옥으로 변해버린 세상 속 유일한 유토피아, 입주민들을 위한 '천국'을 건설하게 된다.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영화의 중반부를 지나가면서 각 주인공들의 지난 과거가 밝혀지고, 그들이 가지는 각각의 욕망과 그로 인한 대립이 극명해진다.
김영탁(이병헌 분)은 사실은 김영탁에게 부동산 사기를 당한 택시기사 모세범이다. 영화 초반 투표인 서명에서 'ㅁ'을 먼저 쓰는 모습에서 김영탁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 사기 당한 돈을 찾으러 김영탁의 집으로 찾아온 모세범은 말다툼 이어진 몸싸움 끝에 (치매가 걸린, 김영탁의 모친이 보는 앞에서) 김영탁을 죽이게 된다.
모세범은 당시 투자와 사기로 인해 집에 빚쟁이가 찾아와 아내와 딸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상황이었다. 살인이 일어난 직후 걸려온 전화에, 모세범은 '지금 해결하려고 하던 중이었다'라는 말에 아내는 '네가 사고만 치고 해결한 적이 있었냐, 차라리 나가 죽어라'라는 말을 듣는다. 전화가 끊기고 대지진이 일어난다. 이후 찾아간 아내와 딸이 있던 미용실은 파괴되어있었고, 모세범은 잔해에 깔린 (아내인지 딸인지 모를) 팔을 붙들고 오열한다.
(아마 갈 곳이 없어) 다시 돌아간 황궁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손수건으로 입만 가린 채, 소화전에서 소화 호수를 꺼내들어 불을 끈다. 이 일로 부녀회장 '김금애(김선영 분)'의 관심을 받게 되고, '김영탁'으로 신분을 감춘 그는 그녀의 모략 아래에 '임시 주민 대표'까지 달게 된다.
"저는 이 아파트가 선택받았다.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주민 대표가 되어서 처음으로 말한 그의 소감과, '모든 것이 리셋된거에요. 살인자나 목사님이랑 같은거야"라는 말에 드러나는 그의 표정 변화 속에서 그의 머릿 속에서 '느낌표'가 그려지는 게 느껴진다. 그는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문제해결'을 대표로서 해내기 위해 몰입한다. 방범대를 이끌고 식량을 구하다가 부딪힌 슈퍼마켓 주인을 죽일듯이 제압하고, 자신의 체제에 따르지 않고, 외부인들을 숨겨주는 이들을 색출하여 공개 심판한다. 명화(박보영)와 혜원(박지후)에 의해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자, 혜원을 아파트 주민이 노폐물을 버리는 낭떠러지로 밀어 죽이고 명화를 비난하는 등 자신의 입지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김영탁, 아니 모태범의 욕망은 결핍된 자기 효능감의 충족이자, 화목한 가정을 꾸리지 못했던 한 가장의 일그러진 단면이 아닐까. 혜원을 밀어뜨리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더니'라고 읊조리는 그의 모습 속에 가부장적 모습도 보이기도 한다. 또한 옆집에 살던 혜원 조차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집에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거나, 끝내 집에 잠쉬 쉬고 오겠다며 902호 문에 들어선 후 쓰러진 뒤 그를 뒤따라온 사람이 신발 신고 들어오자, 죽어가는 와중에도 '왜 남의 집에 신발을 신고...' 속삭이는 그의 모습 속에서, 그 누구보다도 '집'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었음을 보인다. 그러나 그의 애창곡 아파트의 한 소절처럼 그의 집에는 아무도, 아무도 없다.
부녀회장 '금애'는 프로파간다를 양산하는 킹메이커다. 교묘하게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해 자신의 의도대로 길을 만들어낸다. 아파트 주민 회의에서 '외부인들이랑 함께 생존해보자'라는 의견은 '외부인들의 대부분이 우리를 무시하던 드림팰리스 사람들'이라고 환기시키며, '이전에 드림팰리스에 발도 못붙이게 했었다. 만약 지금 상황이 바꼈다면 그들도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설득한다. 본인이 대표로 올리려는 움직임이 있자 '지금은 어디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예전 재건축 당시 우리를 대표했던 000씨 기억나시죠? 우리에게 필요한건 희생정신'이라며 김영탁을 이끌어낸다.
금애가 영탁을 대표로 세운 이유는 뭘까? 어리숙해보이지만 실행력이 있는 영탁을 잘만 이용하면 뒤에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섰을 것이라 예상해본다. 아마 재건축 당시의 주민 대표 역시 그렇게 써먹어 본 경험이 있지 않았을까.
킹메이커의 한계는 결국엔 권력의 중심은 왕에게 있다는 점이다. 김영탁을 중심으로 황궁아파트 커뮤니티가 폐쇄사회로 굴러가게 되고, 아파트 바깥의 정보를 얻는 것이나 약탈로서 유지되는 경제(재분배 등)는 방범대 위주가 되면서 금애의 권력은 축소된다. 하지만 아파트 내부의 결속이나 식량의 배분 등 내치는 그녀의 역할이었고, 그녀의 하나 뿐인 아들을 방범대에 같이 투입하는 것은 커뮤니티 내 지위의 정당성과 아들을 통해 방범대 내부 사정을 파악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이 화염병에 맞아 죽은 채로 복귀하자 그녀는 이성을 잃었고, 이 후 이어진 외부인들의 습격으로 아파트가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도 죽은 아들을 붙잡고 오열만 하는 모습이다. 고급진 파카를 입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모습과, 화장끼 없이 미쳐가는 그녀의 모습의 괴리감은 거짓으로 쌓아올린 것들의 무상함을 생각해보게 된다.
간호사 '명화'는 굳이 얘기하자면 '필요선(善)'이다. 주민대표 김영탁과 부녀회장 김금애, 그리고 남편 김민성의 행동들이 생존을 위한(또는 현 체제를 위한) 필요악(惡)이라면, 명화의 행동과 신념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필요선이다. 선(善)은 보통 드러나지 않는다. 때로는 오히려 현실을 모르고 순진한 얘기만 하는 답답한 것이기도 하다. 내부자로서는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하고 위태로운 아킬레스 건이다.
하지만 필요악은 그 필요성이 사라지면 그저 '악'일 뿐이지만, '선'은 어느 때나 살아있다. 가구디자이너인 도균의 집에서 숨어있던 외부인들의 웃음처럼, 생존의 혹독함 속에서도 진짜 웃음은 선이 있는 곳에서 피어난다. 드러나지 않던 선은 이를 지키기 위한 누군가의 피로 각성되기도 한다. 영탁에 의해 외부인들이 적발되고, 숨겨준 입주민들이 공개재판을 받고 있을 때 도균은 "사람이 해도 될 짓이 있고, 안되는 짓이 있는 거"라고 소리치며 투신자살하자, 그를 몰래 돕고 있던 명화가 각성하고 혜원과 함께 영탁의 정체를 밝혀낸다.
남편 민성(박서준)과 부인 명화의 결정이 갈라진 건 '선한 행동이 꺾였을 때의 반응'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영탁에 의해 가스라이팅 당하며 체제 유지에 앞장섰던 민성은 선한마음을 가진 소시민이었다. 방범대 대장으로 활동하는 민성을 만류하며 '너 원래 이런 사람 아니잖아. 너 이러다가 망가져'라고 설득하는 명화의 말을 통해 그의 본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대지진이 일어나는 시점 트럭에 깔린 여자를 구출하려다 실패하며 자신의 선한 행동이 좌절되는 경험을 한다. 구하지 못한 여자의 눈빛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에서 민성은 자책감 내지는 무력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선한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학습된 무기력'은 집에 돌아와서도, 명화가 들인 꼬마와 엄마의 '마침 제 집처럼 구는 행동'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슈퍼마켓 사장이 영탁의 주먹에 쓰러지고 약탈한 물건들을 싣고 돌아가려던 차에, 사장의 아내와 자식이 죽어가는 사장을 붙들고 우는 장면을 민성이 바라보다가 외면하는 모습에서 그의 악한 행동의 죄책감을 벗어내려는 그의 마음속 몸부림을 보게된다.
이런 민성의 모습 위로, 영화관에 앉은 관객들의 대부분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그러했으니까.
곧게 선 황궁 아파트의 '폐쇄 사회'
vs
눕혀진 고급 아파트의 '열린 사회'
외부인들의 황궁아파트 습격 이후 붕괴된 황궁아파트 입주민들의 커뮤니티를 뒤로하고 명화와 민성은 탈출한다. 어느 성당(명동성당 같기도?)으로 숨어들었으나, 끝내 치명상을 입은 민성은 죽게 된다. 밝아오는 햇빛이 예수와 제자들이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여, 신에게 선택받은 듯 명화의 얼굴에 드리운다. 그리고 창문 너머로 죽은 민성을 끌어안고 우는 명화에게 세 사람이 다가와 함께 하기를 청한다.
그들을 따라간 곳은 쓰러져 수평이 된 아파트였고, 그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또 하나의 생존자 무리를 만난다. 따뜻한 주먹밥을 명화의 손에 쥐어주었고, 여기서 살아도 되냐는 명화의 질문에는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봐요. 살아있으면 사는거지'라고 대답한다. 아파트 밖에는 장벽이 없고, 그 자리에 함께 음식을 나눌 광장이 조성되어 있음을 보여주며 영화는 마무리한다.
수직으로 우뚝 선 황궁 아파트는 체계적이었으나 닫혀있었다. 외부인들을 솎아내고, 철저히 고립되었다. 그들은 미움을 샀고, 세간에는 '천국이라고 포장하지만, 사실은 사람들을 유혹해 잡아먹는 곳'으로 소문나있다. '정말 아파트에서 사람도 잡아먹었냐'는 질문에 '그저 똑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명화의 대답을 통해, 영화는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에게 '사람이 살기 위해서 주먹을 쥘 것인지 손을 펴고 살것인지 생각해보기'를 권유하는 듯 하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제 2의 기생충'이 될 수 있을까?
대지진 이후의 생존기를 다룬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재난 영화의 스펙터클함을 기대하고 보러 간 사람들은 실망할 수도 있겠다. 노래 '즐거운 나의 집'이 오싹하리만치 웅장하게 울리는 오프닝과 클로징에서 '집'을 대하는 우리들의 마음, 생존을 두고서 펼쳐지는 신념의 갈등 등을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낸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면서, 사회를 유려하게 빗대어 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떠오르기도 했다. 시종일간 지속되는 무거운 분위기를 털어낼, 숨 쉴 공간이 좀 부족했던 것 빼고는 나름 흥행을 기대해볼 수 있을 작품이지 않나 생각해본다.
우리는 회색 스펙트럼 위에 놓여있다. 어벤저스를 보며 선이 악을 이기는 것을 환호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부터 누군가에겐 선한 사람이겠지만, 또다른 이에겐 악할 수 있다. 나라는 존재는 관계 속에서 드러나며, 또 그 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나라는 존재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
그리고 거울을 보자.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를 죽을 때까지 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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